(뉴스9=선우태웅기자)2026년 7월 18일 오전 6시54분, 인천 서해구 석남동 쿠팡 32물류센터 6층에서 시작된 불은 무려 61시간 만에야 큰불이 잡혔다. 지상 8층, 연면적 29만9천㎡ 규모의 초대형 물류시설이었다. 근무자 등 121명이 자력으로 대피했고 소방대원 2명이 연기 흡입과 탈진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소방 당국은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하고 장비 231대와 인력 812명을 투입했지만, 대량의 가연물과 복잡한 내부 구조로 인해 진화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정확한 발화 원인은 현재 합동 감식과 경찰 수사를 통해 조사 중이다.
이번 화재는 물류센터 사고가 사업장 울타리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큰불이 잡힌 뒤에도 190명, 123세대가 임시대피소에 머물렀고 주민 진료 상담은 230건, 심리 상담은 58건에 달했다. 주민들은 연기와 분진으로 인한 두통과 속 쓰림, 눈 따가움 등을 호소했다. 현장 주변 벤젠 농도는 기준치를 넘지는 않았지만 한때 평상시의 2.5배 수준까지 높아졌다. 인근 초등학교가 휴업하고 어린이집 14곳이 문을 닫는 등 지역 주민의 일상과 교육 현장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화재는 6층에서 났지만, 소방당국은 5층 배터리를 걱정했다
소방당국이 특히 긴장한 지점은 불이 난 6·7층 바로 아래 5층이었다. 이곳에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한 물류 로봇 수백 대가 있었으며, 배터리 용량을 합치면 전기차 약 20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은 화재가 5층으로 번질 경우 배터리 열폭주로 불이 급격히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해 연소 확대 방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다행히 불은 5층까지 번지지 않았다. 리튬배터리가 이번 화재의 원인으로 확인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첨단·자동화 물류시설에서 로봇과 배터리 설비가 새로운 화재 하중으로 관리돼야 한다는 과제는 분명해졌다.
대형 물류시설은 높은 층고와 넓은 내부 공간, 고밀도 적재 선반, 종이상자·비닐·플라스틱 포장재 등 다량의 가연물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도 인천 화재 직후 “대규모 창고시설은 다층 적재 구조와 높은 가연물 밀집도로 인해 소방시설이 정상 작동하지 않을 경우 대형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서울시 내 대규모 창고시설 37곳에 대한 긴급 화재안전조사에 들어갔다.
시흥유통상가도 ‘물류와 주거가 공존하는 도시’를 추진한다
서울 금천구 시흥3동 시흥유통상가 일대에서는 도시첨단물류단지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금천구가 공개한 사업 대상 면적은 약 15만6천㎡다. 도시첨단물류단지의 기본요건상 총연면적의 50% 이상에는 물류터미널·창고·배송시설과 판매시설 등이 들어서고, 나머지 지원시설에는 주거·업무·공공시설 등을 배치할 수 있다. 금천구 역시 이 사업을 물류와 연구개발, 업무·판매·주거 기능이 결합된 ‘콤팩트시티’로 설명하고 있다.
조합 측이 언론을 통해 제시한 구상에는 로봇 배송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한 물류시설과 상업시설, 약 1,600가구 규모의 주거단지가 포함돼 있다. 대형 물류차량은 지하로만 출입시키고 지하 하역장과 스마트 물류 시스템을 연계한다는 계획도 제시됐다. 다만 금천구 공식 자료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도시첨단물류단지 계획안 구상과 실수요 검증을 준비하는 단계다. 주택 규모와 건축물 배치, 물류시설의 세부 설계는 서울시 승인 등을 거쳐야 하는 사업 구상으로, 아직 최종 확정된 계획으로 볼 수 없다.
물류차량의 지하화는 지상 교통과 보행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지하화가 화재 위험까지 자동으로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 지하 하역장이나 차량 램프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연기를 어디로 배출할 것인지, 소방차와 소방대원이 어떤 경로로 진입할 것인지, 지상 주거시설의 피난 동선과 물류시설의 방재구역을 어떻게 완전히 분리할 것인지에 대한 검증이 별도로 필요하다.
로봇 배송과 자동화 설비가 도입된다면 배터리의 총용량과 충전 장소, 충전시설 간격, 열폭주 감지 및 차단 방식도 공개돼야 한다. 단순히 “첨단” 또는 “스마트”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과 실제 화재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물류 화재와 주거시설이 한 사업구역에 놓일 때
도시첨단물류단지 자체를 위험시설로 단정할 수는 없다. 신축되는 시흥유통상가 개발사업에는 인천 쿠팡 물류센터보다 강화된 최신 화재안전기준과 성능위주설계를 적용할 수 있다. 인천 물류센터는 2020년 건축허가를 받아 2023년 준공된 시설로, 2024년부터 시행된 강화된 창고시설 화재안전성능기준의 직접 적용 대상은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따라서 인천의 사고가 시흥유통상가에서 똑같이 반복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법정 기준을 통과한다는 사실이 재난 위험이 ‘제로’라는 뜻은 아니다. 특히 시흥유통상가 개발처럼 대규모 물류·상업·업무·주거 기능을 한 사업구역 안에 배치한다면 개별 건축물의 소방시설뿐 아니라 단지 전체를 하나의 재난 시나리오로 놓고 검증해야 한다.
화재가 수십 시간 지속되는 상황, 스프링클러 일부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 지하 물류시설에서 차량 또는 배터리 화재가 발생하는 상황, 여러 방화구획에서 동시에 연기가 확산하는 상황까지 가정해야 한다. 주거시설 입주민과 상가 이용객, 물류 종사자가 동시에 대피할 때 피난계단과 도로가 제 기능을 하는지도 따져야 한다.
환경대책도 빠져서는 안 된다. 화재 시 발생하는 연기와 미세먼지, 분진과 낙진의 확산 범위는 풍향과 기상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화재 진압에 사용된 대량의 소화수가 물류시설에 보관된 물품이나 화학성분과 섞여 하수관로 또는 안양천 등 주변 수계로 유출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차단·저류·처리 계획이 필요하다. 인천 화재에서도 주민들은 대기오염 수치가 법정 기준 이하라는 발표만으로는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다며 지속적인 측정과 결과 공개를 요구했다.
서울시도 설계 단계부터 안전기준 강화 방침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인천 화재 이후 신규 대규모 창고시설의 성능위주설계 심의에서 스프링클러 수원의 용량과 살수 밀도, 방화구획별 연기배출설비, 소방관 전용 거점 공간 등을 한층 강화해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창고시설을 긴급 점검해야 할 정도라면, 총사업비 5조원 규모로 거론되는 시흥유통상가 신규 개발사업에는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선제적 안전검증이 요구된다.
현재 공개된 사업개요와 개발 구상만으로는 물류시설의 정확한 방화구획 규모, 저장 가능 물품과 배터리 관리기준, 소방용수 확보량, 지하층 제연계획, 주거시설과 물류시설의 피난동선 분리 방식, 화재 시 인근 주민 보호계획 등을 확인하기 어렵다. 사업이 아직 계획 단계라면 오히려 지금이 이러한 내용을 설계에 반영하고 소유자와 주민에게 공개할 적기다.
시흥유통상가가 노후화돼 정비가 필요하다는 사실과, 도시첨단물류단지 방식이 환경·안전 측면에서 최선인지 여부는 같은 질문이 아니다. 개발의 필요성이 특정 개발방식의 안전성을 자동으로 증명해 주는 것도 아니다.
사업시행자는 도시첨단물류단지 계획 승인이나 소유자 추가 동의에 앞서 독립적인 화재공학 전문가가 참여한 ‘화재·환경 통합안전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 대형 물류시설 화재 시뮬레이션과 주민 대피계획, 배터리 화재 대응계획, 소화수 오염 차단계획을 주민설명회에서 검증받는 절차도 필요하다.
소유자들이 판단해야 할 것은 장밋빛 조감도와 예상 개발이익만이 아니다. 대형 화재가 발생했을 때 누가 주민을 대피시키고, 누가 환경피해를 조사하며, 피해 보상과 복구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소유자 동의서보다 먼저 공개돼야 할 것은 화재와 환경 위험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자료다. 인천 쿠팡 물류센터의 61시간 화재가 시흥유통상가에 던지는 가장 분명한 경고다.
선우태웅 기자 jebo@news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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